상명대학교박물관 유물을 만나다 (93) 독일 마이센
- 작성자 박혜진
- 작성일 2019-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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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아래) 마이센 클락, 19세기
중간 아래) 마이센 칸델라브라, 19세기
오른쪽 위) 마이센 베이스, 19세기
오른쪽 아래) 마이센 베이스, 20세기
중국에서 자기의 역사가 시작된 지 천년이 흐른 후에도 유럽 사람들에게 자기란 신비한 존재였다. 특히 백색 자기 위에 푸른 코발트 안료로 그림을 그려 넣은 청화백자는 유럽의 왕과 제후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수많은 자기 수집가를 출현시켰다. 하지만 유럽에는 아직 자기 제작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중국, 일본 등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었고, 필연적으로 자기는 금보다 더 귀하게 여겨져 이를 구입하는데 어마어마한 비용이 소요되었다.
독일 작센의 제후 아우구수투스 2세 역시 자기 수집가였다. 아우구수투스 2세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군자금 확보를 위해 높은 가치를 가진 자기를 직접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뵈트거라는 연금술사를 고용하여 마이센의 성에서 자기를 만들게 해서 여러 번의 실험과 실패를 반복한 끝에 드디어 1710년 유럽 최초의 백색 자기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초기의 마이센은 중국의 오채(五彩)자기와 일본의 이마리(伊万里)자기의 영향을 받았으나, 1731년 궁정 조각가의 칭호를 받은 켄들러(Kändler)가 도자기 제작에 참여하면서 평면적인 형태에 머물렀던 마이센 자기를 입체적인 예술품의 경지로 끌어올리게 되었다.
이렇게 독일 마이센에서 시작된 자기가 시발점이 되어 영국, 프랑스, 덴마크 등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자기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